센터소개

활동가의 자세

주민과 더불어 인간의 가치가 우선하는
지역사회를 만든다

활동가무엇인가?

활동가는 직책이 아니다. 그 사람의 신원이다. 일과 삶이 일치되어 있는 사람이다. 직책이나 직위에 관계없이 권한과 책임을 다가지는 사람이다.

간사, 총무, 팀장, 실장, 센터장 등은 그 사람이 맡고 있는 직책이다. 업무처리 흐름의 특정 계선(系線)에 있음을 뜻하거나 조직 내에서 업무분장 영역의 담당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자활지원센터나 나눔의집 같은 비영리 민간단체, 시민운동단체에서 이런 직책이 갖는 의미는 일반회사 조직이나 공무원 조직 등에서 갖는 의미와는 많이 다르다.

일반회사나 공무원 조직에서는 직책이 주어지면 거기에 걸맞는 권한도 주어지지만 그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책임의 한계도 명백해진다. 따라서 창조적인 일보다는 주어진 규칙이나 법규내에서만 활동하도록 틀지워지게 되므로 조직 자체가 경직되고 탄력성이 떨어질 우려가 많다.

그러나 자활센터 활동가에게 있어 직책이란 업무상 주어지는 권한과 책임일 뿐, 모든 활동에 있어 보다 근본적이고 우위에 있어야 할 핵심가치는 ‘활동가’라는 신원 곧 그 사람의 정체성에 걸맞는 권한과 책임이다.

활동가는 특정 기능만을 잘 수행하는 기능인이 아니라 설계자이고 기술자이며 보조자이고 뒷마무리까지 담당해야 하는 사람이다. 주어진 일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만들어 낼 줄 알아야하고, 맡은 일을 달성해내야 하는 사람이다. 수동적 기능인이 아니라 능동적이며 적극적인 창조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활동가에게 있어 ‘전문성’이란 일정 기간의 학습이나 시험을 통해 주어지는 자격증이나 학위가 아니다. 자활센터에서 과업의 실패는 활동가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실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취약계층에게 경제적 · 심리적으로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모든 활동 과정에서 치열한 고민과 학습을 필요로 하며 이 과정에서 얻게 되는 지식과 경험들을 자기 것으로 체화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활동가에게 전문성은 필요조건이지 결코 충분조건이 아니다.

자활지원센터는 우리사회의 밑바닥에서 소외와 차별, 불안정 고용과 가난의 굴레를 안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곳이다. 그들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볼 줄 알고, 그들의 자리에서 함께 살아 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여러 가지 만남과 사업을 통해 자신과 이웃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축적하는 곳이며, 이루어야 할 세상과 삶의 모습을 실험하고 창조해가는 곳이다.

지금의 우리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이런 사람들과 활동 속에서 나올 수 있다. 자활지원센터는 활동가의 일터이며 삶터이다. 척박한 우리 사회에서 활동가적인 삶의 모습과 활동가다운 활동이 절실히 필요할 때다.

관악지역자활센터 초대 센터장 송경용

이런 덕목을 갖추고 있는 사람만이 지역자활센터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런 활동가를 만나는 것 자체가 행운일지도 모른다.
활동가는 완성된 모습이 아니다.
다만 이런 덕목과 자세를 갖추려고 끊임없이 단련하고 노력하는 활동가여야 한다는 것이다.

활동가가 갖추어야 할
자세와 덕목

01 헌신적 열정
가장 기본적인 자세이자 덕목이다. 불굴의 투지는 그 사람 개인의 인생을 확장시켜 줄 것이며 남을 감동시킬 수 있는 첫 번째 요인이다. 말이나 이론보다는 몸이 먼저 달려갈 줄 알아야 한다. 투신(投身)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몸을 던진다는 것이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나, 스스로 판단해서 자신이 먼저 십자가를 져야 할 때 그 상황을 회피하는 사람, 어려운 일은 절대 먼저 하지 않으려는 사람, 어려운 일이 벌어져서 수습해야 하거나 새롭게 무슨 일을 해야 할 때 이 일은 내 책임이고 내가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 중요하고 꼭 필요한 일인데 “안 되면 말지!” 하는 사람, 자신의 체면이나 위상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활동가라고 할 수 없다.
일생을 살면서 자식 낳는 일 말고는 늘 남이 만들어 놓은 판에서 주어진 일만 하려고 하는 사람, 남이 해놓은 일에 평론은 잘 하면서 스스로는 아무것도 만들어 내지 않으려는 사람, 한 편으로는 어떻게 하면 그 판에 끼어볼까 생각하는 사람, 한마디로 상습적인 무임승차자, “나는 성격이 어쩌고, 이런 일은 이래서 싫고 저런 일은 저래서 못하는 사람이니까, 내 한계는 여기까지”라고 자기한계를 딱 구분 지워 놓는 얄밉고 이기적인 사람은 절대 자활지원 센터의 활동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 자세와 덕목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지만 지역자활센터 실무자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세와 덕목이다. 지역자활센터는 역사가 오래 되거나 가진 것이 많아서 꼭 껴안고 지켜야 할 무엇이 있는 상황도 아니고 미래 역시 그렇게 보장되어 있지 않다. 아무 것도 없는 들판에서 땅도 파야하고 나무도 스스로 구해 와서 기둥을 만들어야하고 벽돌도 찍어야 하고 지붕도 만들어야 한다. 거의 맨손이나 다름없는 장비들을 가지고.

지역자활센터의 미래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 가야한다. 창조해가야 하는 것이다. 창조는 누군가 도전하지 않으면 이루어 질 수 없다. 실패를 각오하고 그 실패를 소중히 생각하지 않으면 실험 할 수 없고, 실험하지 않으면 완성이란 있을 수 없다. 도전과 실험, 창조의 주체는 누군가가 아니라 ‘나’가 되어야 한다. 스스로 그 도전과 실험의 가운데 서있지 않으면 여전히 주변인이고 이방인이며 완성과 창조의 기쁨도 남의 것이다.
짧은 몇 번의 경험과 몇 권의 책, 습관적으로 회자되는 몇 개의 용어와 개념을 녹음기처럼 되풀이하는 사람, 사람과 일, 상황의 본질을 깊이 있게 천착하지 않고 습관적이고 기능적인 태도가 몸에 베어 있는 사람. 왜? 라고 묻지 않는 사람,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시대적, 역사적 소명이 무엇인가를 탐구하지 않는 사람, 전체를 볼 줄 아는 통찰력을 기르는 것에는 게으르고 그저 그때그때 어떻게 넘길까만 생각하는 사람, 혼신을 다해 책을 붙들거나 관계자를 만나거나 선배나 스승과의 진지한 대화를 나누거나 깊은 사색을 하기보다는 쓸데없는 술자리를 만들거나 스트레스 푼다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 본인이 해결해야 될 과제를 스트레스로 생각하는 사람, 그래서 여전히 문제는 문제대로 남기고 마는 사람, 그래서 자신이 해결해야 할 과제를 전체의 과제로 넘기고 마는 사람, 이런 사람 역시 지역자활센터의 활동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공부, 연구, 학습, 수양, 수련은 필요하면 하는 일이 아니라 반드시 언제나 해야 하는 의무사항이다. 활동가는 자신의 삶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기 때문에 올바른 신념과 가치관, 실천 방법을 습득하는데 게으른 사람은 단순히 나태한 것이 아니라 죄를 짓는 일인 것이다.

지역자활센터가 왜 생겼고 무엇을 하는 곳이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쉼 없이 연구하고 공부해야 할 것이다.
동료들과의 관계에서나 대중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가치관이나 주장만을 고집하는 사람, 반대로 주장 할 줄 모르는 사람, 주고받는 토론을 할 줄 모르는 사람, 대담하게 포용 할 줄 모르는 사람, 껄끄러운 상대나 말썽 부리는 사람, 우리가 만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 자신이 최선을 다하면 사람은 변할 수 있고 변하게 되어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늘 까먹는 사람, 남들이 처한 상황은 나보다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 남이 힘들여 해놓은 일에 “지가 했나? 운이 좋아서 했지!”라고 하는 사람, 자신이 도움 받는 것은 당연하고 자신이 먼저 남을 도와 줄 것이 무엇이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 사람을 키워줄 줄 모르는 사람, “나는 이 소중한 일이 잘 된다면 심부름꾼이 되어도 좋다!”라고 스스로 다짐하지 못하는 사람, 단기적인 성과에 얽매이는 사람, 반대로 장기적으로 보여야 한다고 하면서 게으름 피우는 사람, 이런 사람도 역시 지역자활센터의 활동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하는 일은 결국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이고 바람직한 사람살이의 모습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사람의 변화는 오래 걸리고 많은 정성이 있어야 한다.

스스로가 기다릴 줄 알고 열려 있는 사람으로 변해가지 않는 운동은 모두 거짓이다. 빨리 손 떼라.
구슬도 꿰어야 보배다. 널려 있다고 해서 보배가 아니다. 어디에 어떻게 서 있어야 좋은 것인지,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 가야 하는지가 정확히 판단되어야 한다. 사업의 내용과 형식에 따라 적합한 이론을 세우고 인적 물적 자원을 조직 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능력이(나이가, 경륜이, 관계가, 성격이 등등)요만큼 밖에 안 되기 때문에 요만큼만 할 수 있다.”는 자세는 조직가의 자세가 아니다.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도 고민하고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단기적 상황에 즉응하는 조직도 있고, 장기적인 조직도 필요하고, 지원 그룹도 조직해야 한다. 활동가는 곧 조직가이며, 이 모든 조직의 독특한 역할과 상호관계도 조정 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조직가(활동가)는 자신이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필요에 따라 그럴 수도 있지만 특히 주민조직에 있어서는 주민들 스스로 주체로 설 수 있도록, 잠재 역량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하는 역할, 그래서 조직가를 활성가라고도 한다.

그래서 조직가는 있는 구슬 잘 꿰는 사람이면서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유연함은 자신감에서 나온다. 자신감은 자신의 가치관, 신념과 일이 일치되어 있을 때 가장 강하게 표출된다. 열린 토론을 할 줄 모르거나 매사에 조급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굳게 지켜야할 핵심가치가 아니면서도 굳이 고집을 피우는 것은 그냥 단순한 똥고집에 불과하다. 또한 핵심가치나 사상마저 시대에 따라 변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부화뇌동하지 않고 자기중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는 내공이 있어야 한다. 내공은 현재 발을 딛고 있는 상황에 대한 깊은 성찰과 노력에서 나온다.
일, 사람, 상황을 정확히 읽어 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내가 하려고 하는 과업(일)이 사람이 우선인지, 단순히 상황타개가 우선인지를 생각하며 일을 해야 한다.

자활사업단은 속성상 겉보기에는 흑자운영과 그럴싸한 성과를 내고 있는 것 같아도 사람이 기초에서 서 있지 않으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반면 사람중심의 사고를 한다는 핑계로 매사에 지지부진하고 우유부단하면 이 역시 사람을 잃게 되고 사업단도 살아남기 힘들다.

상황을 판단하고 해결할 능력과 내공이 부족한 체 숲만 바라보며 걷는 것은 활동가 자신도 죽이고 조직도 죽이는 길이다. 참여자들의 욕구를 민감하게 알아채고, 접근 방법을 찾고, 어떤 것이 우선인지 구별할 수 있기 위해서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잘 논다는 것은 그만큼 내공이 쌓여 있다는 것이다. 판만 있으면 날뛰고 시간만 나면 논다고 잘 노는 것이 아니다. 노래방에 가서 멋드러지게 노래를 부른다고 해서 잘 노는 것이 아니다. 노래를 못 불러도 괜찮다, 유머가 부족해도 괜찮다. 자신만의 내공과 향기를 가지고 있다면 이미 잘 놀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놀 때와 공부할 때, 휴식을 취할 때와 일을 할 때를 잘 구별하고, 그 분위기에 맞춰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활동가들이 자활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이미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본 사람들이다. 그 주민들은 심각한(그러나 어설프게 들릴 수 있는)조언보다는 멋드러진(진솔한) 노래 한 자락에 마음을 더 열어줄 것이다. 동료 활동가나 주민들과 동화되고 싶거든 놀아야 할 때 잘 놀아라. 필요한 것은 실력이 아니라 당신만의 향기만 있으면 된다.
열정만 있고 전문성이 없는 사람, 또는 그 반대인 사람, 스스로 나눌 줄도 모르고 희생 할 줄도 모르면서 메마른 정의만 외치는 사람, 가난한 사람들이 처해져 있는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의 개선에는 관심이 없고 봉사정신만 외치는 사람, 둘 다 문제 있는 사람이다.

현안과 단기과제에만 열심히 파고들 뿐 근본적인 문제와 비전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 시중서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공서적 한권이면 다 나오는 이야기를 주구장창 떠들기만 할 뿐 주민들과 교감한 번 해보지 못한 사람. 이 역시 문제 있는 사람이다.

차가운 이성으로 냉철하게 판단하고, 따뜻한 감성으로 주민을 만나고, 비전을 가꾸되 현재에 소홀하지 않는 활동을 지향해야 한다.